치열한 일과 '16시간'..."스트레스? 전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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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일과 '16시간'..."스트레스? 전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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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2> 고층빌딩 청소부 강옥희 씨
"감사할 줄 알면 토 냄새도 향기로워요~"

쾌적하고 편안한 사무실이 마련됐다. 여러가지로 마음에 드는 구석이 가득한 장소건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계단이나 복도 등 사무실 외부공간도 직접 청소를 해야한다는 점이었다.

불현듯 '전에 지내던 건물에서는 계단 청소를 해본적이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편하게 지내온 날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들었다.

'누구였을까?' 사사로운 궁금증에서 시작된 그녀와의 만남은 많은 것을 안겨줬다.

고층빌딩의 계단청소를 시작한지 어언 25년째. 강옥희 씨(57)의 삶은 치열하다.

하루에 일하는 시간은 약 16시간이다.

강옥희 씨. <헤드라인제주>
아침형 인간보다는 야간형 인간이 점점 더 득세하고 있는 현 시대에서는 잠드는 시간으로 더 어울릴 법한 새벽 2시부터 그녀의 일과는 시작된다.

"새벽 2시에 나가서 건물 3개 정도 청소하면 2시간이 지나요. 뒤에 청소해야 할 건물들을 생각하면 5분이 아깝죠."

독실한 기독교인인 그녀는 새벽 4시가 되면 매일 빠짐없이 새벽기도를 나간다. 그리고, 1시간 가량 쉼 아닌 쉼을 가진 후 다시 일터로 뛰어들고는 저녁 6시까지 내리 달린다.

쉬는날, 공휴일을 가리지 않고, 25년간 1년 365일을 그렇게 살아왔다. 현재 그녀가 청소하고 있는 건물은 30여채. 단 한번도 청소를 거른적이 없다.

시간이 지나면서 '베테랑' 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을만큼 기술도 쌓이고 요령도 생겼으나 아직까지도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니다.

"요즘 허리랑 무릎 관절이 많이 안좋아져서 걱정이에요. 얼마전까지는 많이 아팠는데 매일 걸어다니는 운동을 하다보니 그나마 조금 나아지긴 했어요"

철인같은 삶이었지만 누구에게나 그렇듯 그녀도 흐르는 세월을 빗겨갈 수는 없었다.

# 30만원으로 시작한 단칸방 생활

25년전 집배원이었던 남편은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등졌다.

"큰아들이 국민학교 6학년이었고, 막내는 4학년이었어요. 그런일이 생기고 나니 막막해지더라고요"

당시 하루에 17번도 넘게 기절했다고 하니 그녀가 받았을 충격은 어렴풋이나마 짐작될 듯하다.

"그때 세를 들고 살던 집에서 남편이 사고가 났다고 하니 아예 들어오지도 못하게 쫓아냈어요. 집안에 사고난 사람이 있으면 귀신이 붙는다고...죽은 남편을 근처 밀감 밭에 두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죠."

한번 엎치더니 덮치는 일도 순간이었다.

"보험금으로 나온 1200만원은 시아주버니가 모두 앗아가 버렸어요. 단돈 30만원으로 쫓겨나듯 제주시로 넘어왔지만 당장에 머리 뉘일 곳이 없었어요."

가진 돈 30만원을 갖고 외상으로 방을 빌렸지만, 역부족이었고 여기저기 치이다 간신히 얻은 기회로 영평동에 있는 제주모자원 내 8평짜리 단칸방에서 지내게 됐다.

"그때부터 시작한 건물청소를 지금까지 쭉 해오고 있는거에요"

# "아이들만은 꼭 공부시켜야 했어요"

정말 열심히 살았다. 국민학교도 나오지 못한 자신과는 달리 3명의 자녀는 꼭 제대로 공부를 시켜야 한다는 일념이었다. 또 아빠없는 애들이라는 손가락질을 받게 할 수는 없었다.

잠 자는 시간은 불과 서 너 시간으로 줄이고, 끼니는 빵이나 김밥으로 대신하며 2~3명 몫의 일을 홀로 감당했다.

1살 터울의 큰아들과 둘째딸, 막내아들은 그녀의 바람대로 티 없이 자랐다.

"막내아들이 대학교 들어갈 때 즘에는 세 자녀의 학비를 납부하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어쩔 수 없이 막내아들을 군대에 보냈죠. 육군보다 일찍 입대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해병대로." 눈시울이 살짝 붉어진다.

자녀들이 대학을 졸업하고도 큰아들은 유학까지, 딸은 대학원 공부까지 마칠 수 있도록 뒷바라지했다.

30줄을 훌쩍 넘어선 세 남매는 현재 요리사, 학원강사, 법무사 사무소에서 일을하고 있다. 딸내미는 육지 큰 병원 원장에게 시집갔다는 자랑도 뒤를 이었다.

바쁜 강옥희씨를 오래 붙잡는 것은 실례였다. 잠시 시간을 내 만난 제주시청 어울림마당. <헤드라인제주>
# "감사할 줄 알면 토 냄새도 향기로워요~"

"힘든 일이기는 하지만 전혀 마음이 고되거나 스트레스 받는 일은 없어요." 그녀는 삶을 버틴게 아니라 즐기고 있다고 말했다.

이른 새벽, 청소하는 건물 30채 중 절반에는 꺼림칙한 취객들의 흔적이 남아있지만 대수롭지 않단다. "정말 일을 즐기면 토한 냄새도 향기로워진다니까! 하나도 더럽지 않아요"

"일 할 수 있는게 감사한거에요. 그런 사람들이 없으면 내가 일할 거리가 없는 거잖아요."

얼마전 몸이 쑤셔서 받았던 종합검진에서는 재미있는 결과가 나왔다.

"진찰해준 의사 선생님이 그러는데 몸은 망가졌지만 스트레스를 전혀 안받아서 건강하다나요? 그 선생님도 놀라시더라고, 무슨 일을 하시는데 스트레스를 이렇게 안 받을 수 있느냐고요."

계단청소를 하고 있다고 대답하자 의사 선생님은 뜻 밖의 부탁을 해왔다.

"그 선생님에게 초등학교 5학년 딸이 있었는데, 어떻게 하면 그렇게 감사하며 살 수 있는지 우리 딸을 직접 데려가서 일주일만 가르쳐 달라 하더라고요."

어린아이가 남의 집에와서 지내는 것 자체가 고생일 거라고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간곡히 부탁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승낙했다.

"처음에는 손잡이나 난간을 닦으면서 일을 도와주던 아이한테 감사할 줄 알아야 큰 사람이 된다고 자꾸 이야기해주니 나중에는 누군가가 토해 놓은 것을 자기가 직접 치우기도 했어요."

짧은 기간 동안 자녀가 배웠을 인생의 교훈에 비하면 모자라겠지만, 의사 선생님은 그녀의 건강상태를 고려한 한약 두 달치를 소포로 보내왔다.

# 5분의 소중함 "시간관리 칼날 아니면 못해요"

"5분 늦어지면 1시간이 늦어지고, 1시간이 늦어지면 하루가 늦어지는 거에요." 그녀의 시간관리는 '철두철미'하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지금까지 일하면서 아무리 많은 건물을 청소해도 단 한번 거른 적이 없어요. 시간관리가 칼날이 아니면 이 생활 감당 못해요."

온 국민이 힘들었다는 IMF도 성실한 그녀에게는 전혀 문제될게 없었다. "다들 일자리가 없어서 난리였는데, 저는 일이 너무 넘쳐나서 걱정이었어요."

자녀들도 자리를 잡았겠다, 이제 조금 편히 쉴 법도 하건만 일을 그만둘 수는 없다고 한다.

"여기저기 쑤시기도 하고 최근 부쩍 무릎관절이 안좋아지기는 했는데 일을 쉬면 아픈게 오히려 더 심해져요." 25년간 맞춰온 생활리듬, 하루 4시간 자던 것을 1시간정도 더 잠이들면 온 몸이 아려온다고 말했다.

"자식들 바라보면 안돼요. 이제 노후계획 만들어야죠." 앞으로도 그녀는 지금까지 지내온 것처럼 치열한 삶을 즐길 듯하다.

돌아오는 길, 앞선 일화의 초등학생에게 주어졌던 것과 견줄만한 선물이 전해져 왔다. "기자양반도 큰 사람 되려면 5분이 아까운 줄 알아야 해요!"

한약 두 달치로는 어림도 없을 상황에서 무엇으로 보답해야 할지 고민이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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